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 한양도성 (문단 편집) == 축성 == 1395년 수도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이성계는 도성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를 위해 도성건축 담당기구인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영의정 조준의 감독하에 건설했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 또는 숙정문(肅靖門)](肅淸門: 북대문)·흥인문(興仁門: 동대문)·돈의문(敦義門: 서대문)·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의 4대문과 혜화문(惠化門: 동소문)·광희문(光熙門: 시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 위키백과] 초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태종, 세종, 숙종 연간 등의 여러 시기에 걸쳐 유지보수된 흔적이 남아있으며 그에 따라서 성석을 쌓은 모습이 차이가 있다. 그 양상의 변화는 태조 시절에는 일정한 패턴 없이 자연석을 쌓는 모습에서, 점차 정방형(정사각형)의 석재로 가공해서 쌓는 방법으로 변화하며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정교한 정방형의 형태가 완성된다. 북악산 안내소의 팜플렛에 이러한 시대별 축조 차이가 설명되어 있으며, 성벽을 조금만 살펴보면 쉽게 볼 수 있으니 알아두면 투어의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Print.aspx?news_id=NB11269274|한양도성 성벽의 시대별 쌓기 변화]] 성벽 바위에는 그 구역 축성을 담당한 고을과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놓아 결과에 대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성벽의 높이는 현재 소실된 높은 구간은 10 m가 넘었지만 낮은 구간은 5m 남짓이었고 [[해자]]조차 없었기 때문에 전시에 방어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적이 한양까지 쳐들어오면 한양을 버리고 도주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모두 그러했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에도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도성은 전쟁이나 내란 방어용 성곽이라기보다는 왕권의 상징이란 의미가 더 컸고, 실용적 시설이라는 측면보다 인의와 예를 강조하여 평온을 기원하고자 했던 관념적으로 운영된 성격이 컸다고 설명한다.[* 나각순. 2012. "서울 한양도성의 기능과 방위체제". 향토서울 80. [[https://history.seoul.go.kr/nuri/bbs/bbs.php?sub_type=view&b_idx=247&pidx=148522664490&didx=125&bs_idx=125&s_where=&s_text=&search_status=&s_cate=27&s_recom=&s_year=&s_month=&s_day=&page_num=8|서울역사편찬원 자료제공]]] 여러 전란을 겪는 동안 한양 방위체제는 계속해서 개편되었다. 또한 한양도성이 토성이 아닌 석성이 된 이유는 조선 전기 동아시아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석성으로 둘러싸인 도성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양도성을 처음 축성했을 때 사대문을 제외한 대부분 성곽 축성기간이 49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군사적으로도 한양도성은 처음부터 지키기 힘든 곳이다. 규모가 너무 커서 방어하려면 병력이 많이 필요하고, 숭례문, 흥인지문 일대는 완전한 평지라서 지형상 불리하다. 게다가 성 바깥에 잇는 안산, 인왕산, 남산, 북한산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성 내부를 관측할 수 있는 감제고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성 자체의 방위력을 확보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서 성벽을 요새화하고 대규모 상비군을 주둔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조선도 한양도성 자체의 방위력은 최소화하고 대신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같이 인근의 요새화한 산성을 방어 거점으로 사용하는 방위전략을 세운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